9.4
근환이에게
장담하는데, 두서없는 글이 될 거야.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거든.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게 뭔지를 모르겠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전화 끊고 나서 한참 멍했어. 너랑 함께한 1분 1초, 너랑 헤어지고 나서의 1분 1초가 너무 소중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 통화 중에 꾸벅꾸벅 조는 너를 보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속으로 얼마나 많이 삼켰는지 몰라. 내가 표현에 인색해서 미안해. 그게 나도 참 싫어. 왜냐하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는 짐작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 삼켜버린 사랑한다는 말이 눈물처럼 제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분출되기도 하고, 가슴을 아프게 때리기도 해. 그렇다고 이걸 다 표현하자니 하루가 너무 짧아서 안 돼.
너에게 늘 고마워해. 너란 사람을 만나서 참 기뻐. 지난 사랑이 끝난 후부터, 나는 언제고 다시 나를 많이 사랑해줄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자신해왔어. 그리고 너를 만남으로써 그걸 증명했다고 생각했지. 근데 이젠 아닌 것 같아. 물론 연애 초반과 후반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널 놓치면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아.
사실 나는 많이 힘들어. 내 삶보다 너를 앞에 놓았는데, 정작 나 스스로는 네가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 밖에 나가면 하루종일 기운도 없고 피곤하기만 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재미도 의욕도 없어. 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것저것 혼자서 잘하고 다니는 널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너랑 통화하는 걸 빼면, 매일 꿈꾸기만을 기다려. 오늘은 너랑 어디서 뭘 할지 기대하고 고대해. 슬프다. 나는 줄곧 현실보단 꿈을 좇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근데 그 꿈이 네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네.
지금 너와 나의 애틋한 마음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해 아직은 확신이 없어. 이제 기껏 2주 가량이 지났을 뿐이고, 4달 동안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 그래서 걱정도 되고, 네가 '이대로만' 계속 하면 된다고 자신 있어할 때에 선뜻 대답하기도 힘들어. 하지만 오늘 지친 상태로 날 위해 졸음과 싸우는 널 보며 느낀 게 있다면, 이 작고 여린 남자를 내가 평생 지켜주고 싶다는 것.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 할지라도, 나는 너를 가슴 벅차게 사랑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