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26

덩유덩 2016. 9. 27. 07:05

 늦잠을 잤다. 삼십 분 정도. 웬일로 이불 속이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서 성시경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잤다. 택배를 받는 꿈을 꿨다. 오늘 12시 이전에 택배가 오기로 되어 있어서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 가만히 붙어 있을 생각이었다. 근데 주원이오빠한테 연락이 왔다. 찰나에 아주 많은 고민을 하고, 결국 같이 장보러 가기로 했다. 겨우 삼십 분 정도일 텐데 괜찮겠지 하고. 내가 늦게 일어나기도 했고 아침 준비도 늦게 해서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각인 8시 50분에 네토에 갔다. 원래라면 장을 다 보고 나올 시간인데. 어쨌든 재미는 있었다. 그래서 시간도 더 걸렸고. 꿀도 샀다. 그리고 택배를 놓쳤다. 한참 우울했다. 교환학생 와서 한 달 동안 한 것도 없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기대했던 여행도 좋은 인상을 남기진 못해서 고민과 걱정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어젯밤의 내가 이번엔 택배까지 놓쳤다. 진짜 땅 밑까지 푹 꺼지는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청소 아주머니가 오셔서 밀대를 빌려 방을 좀 닦았다. 선물로 초콜렛을 드리고 싶었는데 내가 먹어서 굉장히 후회했다. 우울한 김에 더 심하게 우울해지기 위해 셰임이라는 영화를 틀었다. 꿀을 잔뜩 바른 와플을 먹으면서 보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 한시름 덜었다. 상자를 열었는데 먹거리가 잔뜩 나왔다. 내가 부탁했던 라면이나 참기름뿐만 아니라 새우깡까지 들어있었다. 벽난로 앞에 선 것처럼 온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누군가의 헌신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힘들다고 미혜한테 카톡으로 징징댔는데, 일침 섞인 토닥임이 돌아왔다. 그래, 이 정도면 내가 제법 잘 살았지. 무엇이든 더 주고 싶어하는 부모님과 우울하고 힘들 때 하소연할 친구가 있으니 됐다. 미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풀죽어 있지 말라고 했다. 그건 어느 누구도, 심지어 나조차도 나에게 강요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조급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글귀와 같이, 늘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답을 찾을 테니까.